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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만 잘하고 끝까지 못 가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

Updated: 23 hours ago




따뜻한 봄날의 노란 배경 위로, 노란 꽃들이 햇빛을 향해 곧게 자라나는 이미지

유난히 시작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순간 설레고, 에너지가 오르고, 다시 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시작은 확장이다.

첫 단추를 끼우고, 문을 열고, 더 넓은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하지만 막상 그 문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현실이 시작된다.

처음의 설렘과 고양감, 자신감과 기대는 점점 지루함과 실망, 답답함으로 바뀐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이건 단지 일의 문제가 아니다.

대상, 즉 관계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이 패턴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면, 혹은 가족이나 주변에 이런 성향의 사람이 있다면, 잠시 멈추고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01 시작은 반이 아니다. 시작은 고통을 유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새로운 시작은 가능성이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잠들어 있던 가능성들이 한꺼번에 깨어난다. 확장되는 느낌, 자유로운 느낌,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에 깊이 취할 수도 있다.


시작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쩌면 봄의 사람이다. 봄은 계절의 시작이고, 모든 생명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생동감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새로운 것에 설레고, 자유를 사랑하고,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아직 닫히지 않은 것, 아직 규정되지 않은 것,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사랑한다.


하지만 진실은 따로 있다. 우리는 시작을 할 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늘 미래에 대한 투사를 함께 붙인다. 한 걸음을 떼었을 뿐인데 마음은 이미 저 멀리, 미래의 이상적인 자기 모습에 가 있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벌써 하늘에 올라가 있는 셈이다.


게다가 시작의 단계에는 특권이 있다. 아직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특권이다. 한계, 실패, 좌절, 애도 같은 것들을 아직 만나지 않아도 된다. 책임과 무게가 본격적으로 닿기 전까지는, 시작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 그래서 시작은 반이 아니다. 시작은 그 자체로, 고통을 잠시 미룰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달콤한 허니문 기간(honeymoon period) 일 수 있다.



02 시작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이면에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잃고 싶지 않아서 시작을 사랑하는가. 혹은 무엇을 끝내 손에 쥔 채 남겨두고 싶어서 늘 새로운 문 앞에 서는가. 그건 단지 자극이나 새로움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살아 있다는 감각, 자유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 아직 오지 않은 더 큰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망이 숨어 있다.


그런데 이런 감각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픔, 두려움, 수치심, 분노 같은 감정들과 맞닿아 있다. 시작의 단계를 지나 훈련과 지속의 단계로 넘어가면, 수많은 가능성의 문들이 하나씩 닫히기 시작한다. 선택은 결국 다른 가능성들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닫힘은 두려움을 불러온다. 동시에 정신은 닫혀버린 가능성들을 하나의 상실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선택은 애도, 곧 슬픔의 감정을 동반한다.


또 계속 반복한다는 것은 특별함보다 평범한 훈련을 요구한다. 그런데 시작과 가능성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종종 “나는 특별하다”는 자기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평범함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위협하는 수치심으로 느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 이면에는 현실에 대한 미세한 분노도 숨어 있다. 현실은 언제나 몸을 요구하고, 시간을 요구하고, 순서를 요구하고, 제약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속도가 아니라 현실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사람에게는 조용한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03 반복은 같은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걸고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시작의 문을 열고 들어가 설레는 시간이 지나가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듯 전혀 다른 단계가 찾아온다. 하나의 고정된 리듬과 노동을 견뎌야 하는 반복과 지속의 단계다. 이건 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관계도 똑같다. 로맨틱한 관계든, 우정이든, 처음에는 설렘과 미스터리가 있다. 하지만 환상이 걷히고 흥분이 사라지고 나면, 그때부터 비로소 관계가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 사람은 묻게 된다.

  • 설렘이 없어도 나는 이 관계를 계속 선택할 수 있는가.

  • 흥분이 사라져도, 특별한 감정이 사라져도, 나는 여기에 머물 수 있는가.

이 단계는 머리로 이해하는 단계가 아니라 몸으로 체화하는 단계다.


그렇다고 반복과 지속을 잘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더 성숙하거나 더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적으로 잘 기능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이면의 동기는 사람마다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성격 특성 때문에, 어떤 사람은 강박 때문에, 어떤 사람은 습관이나 환경 때문에 계속해낼 수도 있다. 그러니 지속을 잘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내면까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있다. 반복은 현실이라는 점이다. 반복의 구간에 들어서면 처음의 판타지와 환상은 하나씩 벗겨진다. 그 자리에 한계, 지루함, 산만함, 미숙함, 나만의 속도와 리듬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일에서도 그렇고, 관계에서도 그렇다. 특히 결혼생활을 떠올리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반복은 단지 같은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으로 보면, 반복이란 한 번의 선택을 몸과 시간 속에서 여러 번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즉, 기분이 시키는 대로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아무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수동적 행동도 아니다. 반복은 오히려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현실 안에서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반복은 매우 능동적이고, 동시에 존재론적(existential)인 행위다.



04 봄의 사람이 지속 가능해지는 방법은 감정 이상의 것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시작의 설렘은 선물이다. 시작의 설렘을 온몸으로 느끼고 오래 품을 수 있는 사람은 삶의 생동감과 살아 있는 움직임에 더 열려 있다. 그런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과 맞닿아 있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도 충분하다. 자신 안에 에너지가 있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으며, 때로는 타인에게도 살아 있는 생동감을 건네준다.


하지만 이러한 봄의 사람이 여름의 지속성과 반복을 지나, 가을의 열매 맺음에 이르고, 다시 다음 봄을 준비하는 겨울의 여백까지 살아내기 위해서는 감정의 강도보다 더 깊은 차원의 선택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내가 얼마나 설레는가, 얼마나 하고 싶은가, 얼마나 좋아하는가 보다 더 아래에 있는 것을 물어야 한다. 이 일 혹은 이 사람이 내게 흥미를 주고 즐거움을 주고 설레게 하는가를 묻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 이것은 내가 선택한 길인가


자극은 외부의 새로움에 기대어 생겨난다. 하지만 내가 정한 방향성은 내적 주체성(agency), 곧 내면의 중심을 세운다. 이 감각이 생기면 사람은 더 이상 시작이 주는 정서적, 심리적 이득에만 끌려다니지 않게 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일과 이 관계가 나 자신을 넘어 더 넓은 차원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것이 더 넓은 진리, 연결, 자유, 사랑, 창조와 어떤 방식으로 이어져 있는가를 보기 시작할 때, 사람은 비로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 매 순간 능동적으로 한 방향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선택한다는 것은 자유가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선택하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여기서 책임은 의무와는 다르다. 의무가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버거운 짐처럼 느껴질 수 있다면, 책임은 지금 내가 놓인 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의 문제에 더 가깝다. 그런데 정작 당신이 자신의 삶과 존재의 방향성, 곧 나는 이러한 삶을 살고 싶다는 감각, 혹은 당신에게 중요한 가치와 의도를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선택은 결국 감정이나 충동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전체적 존재가 자유롭게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감정과 충동에 휩싸여 선택되어지는 방향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래서 지속 가능성은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설렘이 줄어들어도, 흥분이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이 길을 선택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온다. 결국 시작을 잘하는 사람이 끝까지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감정이 아니라, 더 깊은 방향성이다.





JIHYE CHOI | Psychotherapist &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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